EXHIBITION


EXHIBITION

Centuries in the Distant Mist [머나먼 안개속의 세기]

Artist : 정여름

갤러리 : SeMA Bunker

기획자 : [주최, 주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기간 : 2023/06/22 ~ 2023/07/11

정여름 개인전, 머나먼 안개속의 세기 / SeMA 벙커 / 2023. 06. 22 ~ 07. 11


동시대 사회에서 보는 일은 틀림없이 노동이다. 가까이서 보든 멀리서 보든 사람들의 시선은 자본의 흐름을 기록한 지도나 마찬가지다. 자본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들면서 보는 사람과 보는 대상 사이의 일체화라는 소망을 추동한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지만 노동한다는 자각은 없는 비자발적 노동, 188p, 240p, 720p, 2k, 4k라는 새로운 계급 체계를 형성하고 오히려 소비를 촉진하는 노동, 돈을 받는 사람과 노동하는 사람이 분리되는 노동, 모두 변화한 종류의 노동이다. 「천부적 증인께」(2021)는 이처럼 이미 일어나 버린 변화에 관한 뒤늦은 예감을 담고 있다. 이 예감은 언제나 화창한 날씨의 내비게이션에는 표기되지 않기 때문에, 피부로 와 닿기 전에는 감지되지 않는다. 안개처럼.



정여름 개인전 『머나먼 안개 속의 세기』는 독이나 약처럼 스며들고 좀처럼 절단되지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너무도 깊숙이 침투되어 있어서 골라내기가 쉽지 않다. 「조용한 선박들」(2023)의 중간에 놓이는 강(鋼, steel)은 그런 사례들 중 하나이다. 어떤 형태로든 가공 가능하며 어떤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고 튼튼하기까지 한 강. 강은 정념이 담길 수 있는 선박들을 대표한다. 1파운드에 4센트 하는 강은 누군가에게는 명예로운 것이다. 그러나 명예를 볼 수 없는 자에게 강은 1파운드에 4센트 하는 강일 뿐이다. ● 마찬가지로 백 달러의 명예를 모르는 사람에게 지폐는 종이일 뿐이다. 빚진 자들의 평안을 염원하며 돈을 태울 때 재가 되는 것은 단순히 종이이지만, 종이가 아니기도 하다. 미국 화폐에 쓰이는 문구 "In God We Trust"는 태워진 돈의 영혼이 어디로 가서 흠향의 대상이 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돈의 영혼은 하늘로 가지 않는다. 돈의 영혼은 "NGÂN HÀNG ĐỊA PHỦ", 즉 「지하은행」(2023)으로 내려가 여전히 이승의 빚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영혼들을 기린다. 영혼이 VND보다 USD를 더 잘 안다면 USD를 태워야 한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앙버터마카롱과 불고기피자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간 전쟁과 국가와 시각 테크놀로지, 장소와 기억의 관계를 침착한 호흡과 응시로 다뤄온 정여름은 이번 전시에서 관광(觀光) 같은 표면적 보기나 응시에서 더 극단적으로 늘어난 끝없이 보기를 생각한다. 짧은 순간 표면을 보는 것과 긴 시간 한 곳을 끝없이 보는 일은 언뜻 생각하기에 서로의 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스크린 앞에 선 관객은 사건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방향 없는 안개 속에서 간혹 들리는 동전 소리와 함께 헤매는 자들은 사실 헤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미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다는 선택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 김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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