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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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안개, 출근길에 새어나오는 깔깔깔 웃음소리

Artist : 유아연 , 김덕진 , 이자연 , 김진 , 추유선 , 정승혜 , 사랑해 , 손혜경

갤러리 : 광명시민회관전시실

전시기간 : 2022/08/10 ~ 2022/08/19

검은안개, 출근길에 새어나오는 깔깔깔 웃음소리, 광명시민문화회관 전시실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서 하안동으로 가는 길목에 과거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여성근로자아파트가 있다. 지금 그 주변은 브랜드 아파트로 재건축되었지만 예전에는 공단 지역 노동자들을 특화해 지은 거대한 주공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이번 전시는 광명이란 도시를 노동 중심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예술 작가들의 관점을 담고 있다. 산업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광명 지역을 재해석하고 MZ세대 노동에 이르기까지 상실한 도시의 장소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전시 제목은 기형도 시인(1960~1989)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중 「안개」라는 시에서 옮겨왔다.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고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공장의 검은 연기와 섞인 ‘안개’는 서울 근교의 소도시에 드리운 산업화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안개 자욱한 안양천변에서 시인 기형도는 구로공단으로 출근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가 발표된 지도 38년이 넘었다. 그 사이 광명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이제 광명은 ‘이케아’나 ‘광명동굴’로 더 자주 오르내린다. 옛 방직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여성근로자아파트가 폐쇄된 지도 몇 해이다. 최근에 아파트 개발이 확정되었다. 시인이 언급한 ‘안개’는 이제 걷혔을까?
가리봉동 구로공단은 디지털 산업단지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지금도 봉제공장들이 산재해 있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저임금으로 봉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2차 산업이 쇠락하고 이후 플랫폼 노동이라는 신노동이 생겨났다. 플랫폼 노동자도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어디 이뿐인가. 농촌 사회가 해체되고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된 광명에는 여전히 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안양천 샛강 위로 떠돌던 짙은 안개는 지난 38년 동안 더 두껍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 아닐까?
‘노동’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자신의 삶과 예술 작업에서 중요한 키워드이다. 자본과 노동의 모순을 이케아의 가구와 같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상품을 활용하여 표현하는 손혜경 작가,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고발하는 추유선 작가, 직접 배달노동을 통해 플랫폼 노동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유아연 작가, 농사일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자연 작가 등이 함께한다. 70~80년대 산업시대 노동 환경에서부터 MZ세대의 노동 현실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의 노동 풍경이 한 자리에 보여진다.
전시를 함께 준비한 작가들과 시 「안개」를 읽으며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이 깔깔거리며 지나간다”는 구절이 어딘가 우리의 모습과 겹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노동과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이 깔깔깔 소리 내어 웃는 행위에 있지 않은가? 전시를 준비하는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급변하는 산업의 흐름에 맞춰 광명시도 빠르게 변화해왔다. 그러나 한편에선 매일 아침, 노동현장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주공아파트 대신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고 더 이상 수요가 없다며 여성근로자아파트는 폐쇄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광명에는 하루의 고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전시에 오는 광명 시민들과 더불어, 과거 노동 장소를 통해 현재의 노동을 들여다보며 안개 저 너머의 세상을 그리고, 함께 꿈꾸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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