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xx

Your Solo Exhibition [당신의 개인전]

Artist : 김동찬

전시기간 : 2019/12/16 ~ 2020/01/08

Your Solo Exhibition / Dongchan Kim / Space XX / 2019.12.16 ~ 2020.01.08



김동찬 작가와 나눈 축구와 비 예술에 관한 두세 가지 것들 / 김남수 안무비평

#1. , , 정다면체 클라스린 패스

" ." ( 축구공이 구체가 아니라 정다면체로서 바닥과 접촉한다는 것에 꽂혔다 김동찬 작가)

본래 축구공은 몇 개의 가죽으로 된 기하학적 판이 엮여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바람을 넣으면 그 판의 면들이 둥글어지면서 구체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공은 바람이라는 디자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정다면체로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구체라는 이데아의 표상 이전을 생각했던 플라톤의 사유를 일정하게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구체가 된다는 것과 한없이 구체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다르다 가령 정이십면체의 꼭지점들을 깎는다. 그러면 깎인 면은 다시 다른 기하학적 모양이 나온다 육각형 이 잠재해 있던 기하학 한없이 구체에 가까워지도록 그 깍인 면의 꼭지점들을 다시 깎고 또 다시 깎다보면 그 잠재해 있던 기하학이 속출한다 점점 구체에 가까워지지만 여전히 바닥과 접촉해서 정지해 있는 이상한 축구공을 상상해보자 무한히 작은 접촉이지만 좌우간 바닥에 닿은 것은 점이 아니라 면이다.
예전에 축구공을 가죽이란 재질로 만들지 않았을 때 공은 서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공은 대지가 도 경사만 있어도 굴러가기는 한다 유동적인 오브제 하나의 3면이 있으니까 바닥과 만나서 저항력이 있다 축구공 안의 바람은 이 저항력을 숨긴다. 그런데 정다면체에서 꼭지점을 깎으면서 나타나는 잠재적인 기하학은 왜 저항력을 갖는가 바닥에 정지해 있으면서 바닥과 길항하는가.
길항? 우리는 이 표현에서 공이 바닥과 마주하면서 바닥과 갈등하는 의식이 있는 듯 느낄지 모른다. 저항하는 오브제는 의식을 갖는다는 발상은 이상하지 않다. 최소한 인간은 이 발상에서 사회적 삶을 꾸려왔다.
김동찬 작가는 이전 드로잉 작업에서 반복되는 작가적 모티브 장면이 있었다 경사로 있고 그 길 위에 공을 내려오는데 어떤 삼각형의 형상이 그 공의 진로를 막고 있는 그림이다. 공의 에너지와 삼각형의 저항 이를 작가는 보다 젊은 시절의 역마살에 의한 여행 과정으로 생각한다 역사 속에 나오는 물계자 라는 사람처럼 그의 감각처럼.
물계자 는 신라 사람으로 거문고와 칼 사이를 오고간 감각의 교육자이다 음악을 배우려는 제자에게는 검술을 가르쳤고 검술을 익히려는 제자에게는 거문고 연주하는 법을 가르쳤다. 가르친다는 것이 어폐가 있는 것이 그는 두 개의 감각 사이를 엿보게 하고 제자 스스로 눈이 뜨여져 체득하게 했다. 감각들은 이상해서 서로 거울처럼 비추면서 저절로 길이 열렸다.
이제 동찬 작가는 축구공을 생각하며 자신의 그림 속의 그 삼각형 형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길이 열리도록 그 대신에 공은 정다면체로 바뀌어진다 공은 구르지만 면이 생겨서 저항한다. 면과의 접촉에서 어느 순간에는 정지할 것이다. 마치 스스로 감각으로부터 의식이 생겨난다는 듯이.

" ." 플라톤을 비롯해서 돌아가신 분들에게 복비를 드리고 싶다

그 축구공이 저절로 길을 열고 가는 것에서 신 경 을 느낄 수 있다 신경이란 무엇인가. 서구에서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감각과 운동의 세포 단위를 지칭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신이 다니는 길" 이라는 다소 근대 이전의 뉘앙스를 살려서 번역했다. 물론 여기서 '신' 은 '기' 라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보다 정신적인 차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철학의 체험적인 영역 '리' 라는 진리와 '기' 라는 현실적 구현이 하나로 합쳐진 체험적 사건의 영역이다.
동찬 작가는 이러한 신 온 ' ' -- " , 몸에 걸쳐 환하게 얼었던 것이 풀리는 듯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 (임성주) 을 신경으로 부터 추출해내는데 그 경로가 신경세포의 끝에 있는 '클라스린' 이라는 부분이다. 육각형과 오각형을 잇댄 축구공 디자인과 거의 동일하게 생긴 이 '클라스린' 은 안정감 있다. 그러므로 신경세포와 신경세포가 마주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빈 공간을 뒤에서 지원해준다. 마치 대지를 가르는 축구공처럼 신이 다니는 길 이 그 가르는 공에 의해 예시되는 것처럼 신기하게도 우리 신체 내부에 이미 축구공 형상이 있고 이 형상은 우리가 느 끼는 감흥과 사유에 관여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클라스린' 은 주고받는 일의 아이콘 같은 것이다. 거문고와 칼이 서로 주고받는 일 '클라스린' 의 물계자가 아닌가.
축구는 드리블하는 것도 슛하고 골인시키는 것도 맨 처음은 아니다. 축구는 주고받는 것이다 패스 . !

"이번 전시를 하면서 축구공을 전시하고 싶었다" (김동찬 작가)

#2. 비축지축의 축구

축구의 발상지 스코틀랜드에서 축구가 지금과 비슷한 형태가 되기 이전에 세계 곳곳에는 축구 비슷한 놀이가 있었을 것이다. 즉 그 대부분이 주고받는 행위 즉 패스에 가깝다. 신이 주는 선물처럼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신의 안배처럼 우리도 우리 자본주의도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그라운드가 되지 않도록 패스를 해야 한다. 축구공이라는 사물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 패스는 가능하지 않을까.
<열자> 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활쏘기의 명인이 되고 싶은 누군가가 첫번째 스승에게는 벌레의 심장을 쏘는 법을 배우지만 두, 번째 스승에게는 하늘을 나는 매를 쏘는 법을 배운다. "벌레의 심장은 계속 들여다봐서 쏜다" 이른바 "사지사 즉 쏨으로써 명중시킨다" 라는 것 하늘의 매는 보지 않고 가늠한다. 이른바 비사지사 즉 실제 활쏘기를 하지 않고 명중시킨다 라는 것.
다시 클라스린 이 클라스린 은 실제의 축구공을 차지 않지만 우리 감각이 축구를 이미 하고 있는 상태를 시사한다. <열자> 를 빗대면 비축지축 이다. 즉 축구공을 실제 차지 않지만 축구가 가능하다 라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 내부의 뉴런과 뉴런이 주고받는 일 타인과 감흥을 주고받는 일이 모두 가능하다. 우리 자신의 감각과 사유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하는 대화 여기에 축구공 없는 축구의 상태가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축지축 이 있다. 축구공이 굴러감으로써 가능하다. 비축지축 이 있다. 축구공은 안 찼는데 축구가 이미 있다. 동찬 작가의 정다면체 축구공 디자인은 우리 두뇌 속에 있는 축구공과 신비롭게 상응한다. 그 디자인은 전시에서 시각적으로 설치될 수 있지만 그 시간에도 우리 내부의 축구공은 주고받는 원초적인 감각으로 비축지축 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는 세상은 축구공을 인지하려는 세상입니다"

월드컵 한달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축구공을 따라가고 주시합니다. 그리고 축구공 아닌 것은 가급적 생략 됩니다. 중계 카메라 자체가 축구공을 추적합니다. 저의 조카가 축구 산수입니다. 이상한말 같지만 축구 선수로서 축구공에 집착합니다. 저는 그 집착을 말리고 싶지요. 축구공이 아니어도 축구를 더 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전성기의 설기현 선수가 그걸 아주 잘하는 선수였습니다. 김동찬 작가

#3. 오프 더 볼의 아름다움

오프 더 볼, .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이다.

오프 더 볼은 이제는 보통의 축구팬들도 시야가 생겨서 알고 있지만 축구선수들한테는 너무나 중요한 움직임이다.
"제가 볼 때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오프 더 볼을 많이 안합니다" 김동찬 작가
동찬 작가가 볼 때 오, 프 더 볼을 하지 않는 세계와 오프 더 볼을 하는 세계는 천양지차가 있다. 오프 더 볼을 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물신적인 대상이 있으면 다들 가치관이 있음에도 그 대상을 중심으로 뭉쳐져 있게 된다. 같은 색깔의 공처럼 오프 더 볼 상태에서는 상관이 없다는 것 공이 없기 때문에 다. 차원적인 상태이다. 상대 선수의 움직임도 상상하고 공의 위치도 미리 상상한다. 미정인 여러가지가 어느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 마주칠 것을 가늠한다.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는 폼이 좋다. 그럼에도 . 골장면에서 해리 케인 선수의 오프 더볼이 있었기 때문에 바다처럼 공간이 열렸던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 그의 오프 더 볼이 없었으면 이 두 공격수는 한 지점에서 뭉쳤을 것이다. 같은 위치에서 만나고 겹쳤을 것이다. 그럼 상대편 수비의 계산기 아래에 놓인다. 예측가능하고 결정론적이다.
동찬 작가가 사는 오프 더 볼이 없는 세계는 좋은 게 좋은 거고, 좋은 것은 항상 정해져 있는 거고 항상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거다. 그러나 이 세계에 있는 축구공은 힘이 아주 쎄다. 공에 뒤떨어지게 되는데 공이 너무 빠른 것이다. 자본 공일 수도 있고 제도 공일 수도 있다,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 저처럼 땅바닥에 떨어져서 주저앉는 사람은 세상을 따라가지 못한다" 김동찬 작가

오프 더 볼의 세계에서 온 동찬 작가는 주저앉아서 정다면체의 축구공이 보여주는 접촉의 감각 비축지축 의 감각에 감탄하지만 우리가 사는 오프 더 볼이 없는 세계는 그 감탄을 무시한다. 그 세계에 사는 우리 현실에서 미래가치의 상상력은 감흥의 배분에 따른다. 케인이 보여주는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 오프비트와 헤미올라의 엇박 능력 최고 레벨의 슈팅 능력에 의해서 축구팬들은 열광한다. 그의 오프 더 볼보다 이 보이는 감흥의 배분에 의해 달아오른다. 그리고 손흥민 선수는 그에게 대각선 패스를 전달한다. 수비수들 사이로 역시 감흥의 배분에 의한 시각적인 영역이다. 축구에서 대지를 가르는 패스는 여분의 공간을 여는 일이지만 동찬 작가가 말하는 오프 더 볼의 세계는 "누가 더 잘한다" 의 세계가 아니다. 일어나는 세계다. 여러가지가 일어나는 거다. 프레젠테이션에는 담을 수 없는 선형적인 내러티브로는 설명이 안되는 세계다. 상황이 있을 뿐이고 그 상황은 축구공이 없는 가운데 일어나고 일어난 것은 결정적이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그 장면에 동그라미를 쳐서 간단히 보여준다. 오프 더 볼 상태에서 움직임이 좋다고 말한다. 동그라미는 오프 더 볼을 관계중심적으로 예시하지는 못한다. 이는 칠판의 역할이다.

과거 박지성 선수가 볼이 없을 때의 움직임이 탁월했다 자기편 선수가 패스하도록 유혹하고 촉발했다. 퍼거슨 감독은 그 모든 잠재적인 것 미래적인 것을 내다보지만 선수들은 그렇지 못했다. 거기에 인종적인 요소가 있었을까?

#4. 공의 중력

"그걸 사용해야 돼요 독일에서 저는 혼자 다닐 때 좋았어요 동양인이 없는 가운데 저만 다르게 생긴 거에요, 그 차이의 상태가 너무 좋았죠"

1980년대 백남준 작가는 이런 명제를 내세웠다 "DNA" 는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비서구의 자기차이화 의식은 자기 내부로부터의 기질적인 것을 긍정하는 가운데 원한 감정 없는 차이의 긍정으로 성큼 나아간다. 김동찬 작가는 식민주의에 결부된 인종주의의 문제를 그처럼 과감하게 돌파해나간다. DNA 피해의식과 절연한 채, 스스로의 자기차이화를 위한 나선운동을 하는 것처럼.
작가에 의하면, 독일의 한국계 유학생들 중에는 인종차별을 당하고 그 트라우마가 작업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아시아계 축구 선수가 유럽 무대에서 저평가당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스포츠는 여기 이곳이 종주국이라 외국인이 역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의 기계적 개선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박지성 선수가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할 수 있는 게 많았죠 그들 생각에 조그맣고 동글동글한 사람이 훨씬 더 자극이 있었죠. 모기처럼 뛰어당기는 상태가 축구에서는 생김새, 인종적인 것까지 포함해서 작용하죠 그러한 종합이란 측면에서 장점이 있어요. 하나 더 자극할 수 있다는 것 하나" 더 다름이 있다는 것.
한준희 위원이 보여주는 박지성 선수의 장면은 그래도 중력을 받고 있다. 공의 중력 오프 더 볼 상태에서 느끼는 공의 힘. 비축지축 이란 축구가 일어나는 그라운드에서 오프 더 볼 상태에 가깝다면 이 공의 중력이 가늠해야 할 중요한 것이다. 이때 거리감 의 가늠이 필요하다. 중력과 거리감 반비례 관계이다. 가령 공이 상대편 페널티 서클 부근에 가 있을 때 대각선 방향의 풀백들은 그 공의 중력을 덜 받는다. 해리 케인처럼 움직이는 것에 영향을 받더라도 그것은 공의 중력 그 다음의 고려 사항이다. 그러고 보면 축구선수들은 서 있는 사람이 없다. 공이 없어도 그 중력권에 놓여 있는 것처럼 계속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축구라는 감흥에서 소위 버로우 탔다" 라고 할지라도 평점 이하의 활약을 했다고 해도. 야구는 오프 상태가 많다. 축구는 오프 상태가 없다. 축구는 공의 중력에 대한 거리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오프 상태는 없다. 한준희 분석판에 따르면 손흥민 선수가 순간 가속을 붙이고 공간을 열고 슈팅을 날리는 장면은 단순한 3단계이다. 그러나 이 단계보다 더 정밀하게 분석하여 5단계, 9단계를 가면 이제는 더 많은 동그라미들이 보인다. 왜냐하면 손흥민뿐만 아니라 해리 케인 델리 알리 등등 다른 나머지 선수들을 포함해서 동그라미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즉 그라운드에서는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5. 데 브라이너의 패스

정다면체의 공 그 공의 중력을 가장 잘 이용하는 선수는 누구인가? 맨시티의 케빈 데 브라이너 선수가 아닌가!

그는 오프 더 볼 상태에서 돋보이지 않는다. 그는 물신적인 공의 지배자로서 공간 지각도 잘하고 그 지각력을 바탕으로 패스를 이상적으로 실현한다. 어떻게 클라스린이 순간적으로 미래를 시뮬레이션 하는지 몰라도, 중력을 벗어나는 거리 측정을 하는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말이 안되는 플레이 수준이다. 왜냐하면 패스의 방향은 훈련으로 커버가 된다. 발바닥 면적을 사용해서 기본기를 다질 수도 있다. 그런데 속도는 본능이다. 타고난 조율이다. 공과 발의 접착은 한순간인데 축구는 그 한순간에 끝난다. 공은 마치 자기 혼자 각성한 것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매번 매 순간 속도들이 다 다르다. 데 브라이너의 패스가 최고다. 일정한 속도감이 있지만 상황마다 순간적으로 패스 속도가 변속기어를 탄다. 숏패스 롱패스 킬패스 그것은 공의 정다면체 그 정지한 면과의 접촉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결국 땅바닥과의 접촉으로 확장된다. 잔디를 알아야한다. 잔디구장에서 접촉되는 감각은 모두 저마다 구체적이고 미스터리하다. 짧은 잔디, 긴 잔디, 마른 잔디, 물 먹인 잔디, 겨울 잔디, 봄 잔디 등등 잔디의 결을 잘 알고 읽으며 느낀다. 그는 그럼으로써 무중력 상태로 피사의 사탑에서 축구공을 떨어뜨리는 자다. 축구공이 문득 공의 중력을 잃는다. 정다면체의 오브제는 이 지점에서 비축지축 의 또다른 상태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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