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ernative Artspace IPO

Here We Find Demeter [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

Artist : 김진

전시기간 : 2019/10/26 ~ 2019/11/03

Here we find Demeter / Jin Kim / Art Space IPO / 문래예술공장 문래창작촌 지원사업 2019 MEET 선정



데메테르가 행복과 마주하는 방법
How to Find Happiness for Demeter (Δημήτηρ)


김진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 Here We Find Demeter>에서 작가는 ‘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관한 근원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서의 작업을 전개했다. 작가는 산업화의 물결이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으로 밀려들어 오기 이전 모습을 기억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질문한다.
기계 소음을 뒤로 하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임대 주택 단지 중의 하나가 있다. 이 임대 주택은 6-7평 정도의 단층 건물로 식민지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 서민들을 위해 지어진 것이다. 이 임대 주택들에 살던 일본인들은 해방과 동시에 떠났고, 이 집들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이제는 사람이 사는 집 반, 빈 집 반이지만 그래도 삶의 장소로서의 기능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
2016년부터 김진 작가의 프로젝트 참여자가 되어준 ‘쭈꾸미 식당 사장님 J’는 그 곳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이다. 작가는 J를 우연히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만났다. 1959년생 중년 여성 J는 대화 중에 김진 작가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고, 그 과정에서 J는 문래동 산업 단지 뒤편에 있는 집단 주택의 존재를 작가에게 알려주었다. 2018년 어느 날 J는 자신의 집으로 작가를 초대했다. 작가는 J의 방 벽에 붙어 있는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다. “인생이 헛헛할 때면 안양천으로” 가서 잔디밭의 네잎클로버를 집어온다는 J의 말에 작가는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보다 인생에서 행운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와 J는 2019년부터 틈이 날 때마다 미술 수업을 진행하면서 작가와 참여자 이상의 관계, 이웃과 이웃 이상의 관계, ‘우정’을 쌓아나갔다. 작업을 위해 시작된 만남은 미적 대상을 생산하는 시간이기 보다 J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슬픔을 위로하고,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김진 작가는 이러한 대화 속에서 J의 말이 자신의 어머니의 말과 겹쳐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에는 너무나 각박했던 현실을 마주해야 했던 그 여인과 어머니의 모습이 중첩되면서, 딸과 어머니의 관계, 일상 공간 속의 권력 관계, 재생산 노동의 의미 등에 관한 사유를 발전시켜 나갔다.

전시 <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작가가 ‘관계’라는 얽힌 실타래를 푸는 공간이다. 작가는 이 공간에 <말한다>, <듣는다>, <침묵한다>, <본다>라는 네 작품을 배치하여 가족,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의 관념도(觀念圖)를 그려냈다. 이 공간은 ‘카나리아 옐로’ 색처럼 밝고 화사하며, 어떤 희망을 연상시키는 노란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공간은 희망으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갈등 해소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경주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말한다>이다. 약 160여 개의 작은 부조들이 벽과 한 몸인 것처럼 열을 지어 부착되어 있다. 작가는 <말한다>라고 이름은 지은 이유가 여성의 가사 재생산 노동을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고 몸으로 말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김진 작가는 앉아서 걸레로 바닥을 힘주어 닦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하나의 프로토타입으로 디자인했고, 성형틀을 통해 약 20 × 15 ㎝ 크기의 부조 피스를 복제했다. 하지만 작가는 각각의 피스에 개성을 부여했고 따라서 160여 개의 부조 피스는 완벽하게 똑같지 않다. 초벌구이하기 전 부드러운 점토 상태로 성형된 각각의 피스에 어머니에 의해 버려질 뻔 했던 일상의 부산물들, 예를 들어 고무장갑, 맥주캔, 바느질하고 난 뒤의 엉킨 실, 머리카락, 청소 후의 먼지, 쌀알, 잡초, 파스 등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이 작업은 하나이지만 여럿이고, 여럿이지만 동시에 하나이다. 부조 속의 여인은 어머니이기도, J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일 수도, 나아가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다.
<말한다>의 부조 피스가 설치된 벽면에는 <듣는다>라고 이름 붙여진 또 다른 작품도 설치되어 있다. 앉는 부분의 반이 벽 속으로 사라져버린 의자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듣는다>는 벽 속으로 사라지기를, 혹은 벽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과 분리될 수 없다. 작가의 자화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듣는다>에는 벽의 색과 같은 페인트가 흘러내리고 있다. 앉을 수 없는 의자인 <듣는다>는 페인트를 들이 붓는 행위로 인해 생동감을 획득했지만 무엇인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 또한 암시하고 있다.
<듣는다>와 대각선을 이루는 지점에 등받이가 반쯤 없어진 노란색 의자와 테이블로 구성된 <침묵한다>가 있다. ‘식탁’은 백색 테이블보로 덮여 있는데 여기에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손의 이미지가 실사로 프린트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세 겹의 쉬폰 천에 각각 프린트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걸레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테이블 중앙에는 테이블 위에 어떤 물건을 놓게 될 경우 결코 안정적으로 물건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 크기의 구멍이 나 있고, 테이블 옆면 일부도 유실된 상태이다. 의자와 테이블 사이에는 일정 분량의 톱밥이 쌓여 있는데 이 톱밥은 의자와 식탁에서 상실된 부분이 분쇄된 것과 동일한 양이다.
이질적 존재 회색 의자 <본다>가 이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본다>에 앉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름이 20 ㎝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의자에 앉기 위해서는 균형 감각과 주의력이 필요하다. <본다>는 <말한다>, <듣는다>, <침묵한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갈등 상황을 마치 아무 관심 없는 듯 관조한다. 개인을 모으는 사회인 ‘식탁’에 모여 앉을 수도 있고, 이를 거부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는 <본다>는 이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J, 작가의 어머니,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음을 암시한다.
갤러리는 조용하지만 왠지 모를 생동감과 움직임, 그리고 인기척으로 가득하다. <말한다>의 걸레질을 하는 160여 명의 여인들도, <듣는다> 위의 페인트도, <침묵한다> 테이블 위 손의 이미지와 바닥에 흩어진 톱밥도 모두 고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긴장의 순간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침묵한다>의 주인공인 의자와 테이블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앞에 놓인 톱밥과 같은 가루가 되지 않을까? 노란색 희망으로 포장된 공간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고단한 삶을 슬퍼하는 것 같다.
<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의 또 다른 공간은 작가가 J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한 아카이브 역할을 한다. 이 공간의 벽은 네잎클로버와 유사한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졌다. 작가는 J가 미술수업을 통해 그린 그림들 중 일부를 선별하여 이 초록색 벽에 걸었다. 또한 작가는 J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감동을 주었던 말을 <밤 이론>, <야생화 이론>, <토스트 이론>, <네잎클로버 이론>, <신생아 이론>, <딸 이론>, <손 이론> 이라는 제목의 글로 정리했다. 작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J의 목소리를 ‘이론’이라는 이름의 시(詩)로 재탄생시켰다.

김진 작가의 작업은 아침마다 들려왔던 어머니의 “쌀 씻는 소리”와 J와의 미술수업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성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작가는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인권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에 관해 끊임없이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불행할 때 인간에게 봄은 오지 않는다. 우리의 데메테르는 지금 행복한가? 작가는 <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데메테르가 행복한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작가의 데메테르 찾기 프로젝트는 데메테르에게 어떻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를 사유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완결되기 보다는 발전하는 어떤 실천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가정 나아가 사회 구성원의 관계의 관념도와 같은 공간을 구축했고 우리는 지금 그 공간에 초대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인간인 이상 데메테르의 행복과 불행에 관해 절대적으로 무관한 이방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조새미(독립 큐레이터,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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