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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란종

Artist : 박철호

전시기간 : 2022/04/16 ~ 2022/05/07

교란종, 박철호 개인전, 플레이스막


“우리는 다 고물”
작품 교란종(2022)에 출연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 아, 그러니까 결국 우리도 다 고물이야!” 한 배우가 한 말에 모두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 한마디에는 작가에게 캐스팅되고 디렉션받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철호는 배우들의 평상시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이 가진 저마다의 정체성과 특징 또한 고물처럼 주워 담았다. 박철호의 작업에 쓰이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작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을 만나게 되었는지 곱씹으며 구렁이 담 넘듯 이야기 속에 배치한다. 선택의 영역에서 벗어나 고독해진 것들에게 존재를 만끽하게 하는 전령사로서 역할. 애써서 만든 누군가의 수고로움과 또 다른 누군가를 살렸을 사물들이 제 역할을 잃고 풀이 죽었을 때 슬며시 끌어안는. 죽음과 생을 관통하는 만물이 먼지에 뒤덮여 업신여겨지는 데에서 연민을 느낀 건지. 그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이야기 속에 자리하게 하고, 쓸모를 주면서 작가는 삶이 주는 무게를 덜어낸 건지도 모를 일이다. 죽은 화가의 작업실을 철거하면서 남겨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버려진 도록의 도판을 참고하면서 재료들의 물성을 체득하는 작가의 과정은 쓸모를 부정당한 사물들이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 살아남는 이야기, 살게 되는 이야기이다. 즉 생이라는 불완전한 형태로
태어나 자기만의 신념을 품고 살아가는 미지로 가득한 인간들의 실존에 관한. “어디에선가 나 또한 교란종이었을 테니까.”
교란 과잉의 결말은 어떤 모습일까? 93년을 산 촘스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미 늦어버린 것일까?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점쳐볼 수 있을까?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웃기다. 짜증이 나기도 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일들도 많다.
상식이라는 게 뭘까? 믿는다는 것은 무얼까? 맞는 게 뭘까?
존재하는 걸까? 박철호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어낸다. 박철호의 이야기가 작가의 재능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채집한 것들의 조합이라는 데에서 아이러니한 슬픔과 괴로움이 꿈틀댄다. 인간이 믿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을 다시 산산조각 내는 인간들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어지럽히고 건드리면서 역사를 만들어간다. 전시 ‘교란종’은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하지만 사실 신성모독이나 종교비판과는 상관이 없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순간의 선택과 태도가 만들어내는 교란의 징후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큰 의미가 부여되고 만들어졌다가 아무 힘도 없이 흐트러지는 고물과도 같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욕망, 해야 한다는 의식과 관념들로 채워지는, 당연히 살아내야 하는 삶의 순간을 채집한 결과일 뿐이다. 박철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내 허례허식이 지나친 까닭도 있겠지만 세상이 죽인 사물을 살려내면서 그가 얻은 통찰이 꽤 깊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첫째 박철호는 기본적으로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다.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 하다 보면 “이거 그거 아니야?”, “그건 많이 보여주는 방식이잖아?” 까칠하게 되묻는다. 둘째 박철호의 작업은 작가가 가진 성향 그대로 어떤 카테고리에도 만족스럽게 속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지점에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현대미술의 범주 안에서 또한 작동된다. 누구는 그를 감독이나 연출가로 보기도 하고, 누구는 다원예술을 다루는 동시대 미술가로 정의하기도 한다. 셋째 그의 이야기는 얼키설키 짜낸 장광설이다. 영감을 받는 대로 마구 확장하는, 마구 쌓이는, 마구 압축되는 이성적 헛소리다. 글을 구조적으로 조직하는 것보다도 소통에 대한 의지를 앞세운다. 그런 지점에서 그는 미술 안에 존재한다. 글 안에서 오작동하는 글쓰기 규범은 읽기를 방해하기도 전에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혹시 당신은 규범에 걸려 넘어졌는가?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로부터 해방된 작가의 이야기는 작문의 세계를 교란하는 또 하나의 교란종이다. 나름의 질서가 있지만 질서를 망가뜨리는 존재에 대한 장광설은 한없이 평범한 인간사의 무게감 있는 장면들을 집적한다. 저울로 달아서 팔면 큰 벌이가 될 만큼. 뱀에 대한 공포로부터 시작돼 인연으로 만들어져 그의 재기발랄함으로 엮어진 이야기는 오서독스 하다. 박철호에게 요령은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제 할 일을 하는 스트레이트 펀치만 있을 뿐. 제기랄, 다 읽었네. 이런 장광설을 봤나! 그래서 말이야, 전시 속 토끼가 숨긴 부활절 달걀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건데?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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