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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e Way [에너지의 영역]

Artist : 손현선

전시기간 : 2022/02/05 ~ 2022/03/18

에너지의 영역, 오퍼센트, 손현선


≪에너지의 영역(Hole Way)≫은 2022년 2월, 현재의 손현선에 대한 이야기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회화를 주축으로 퍼포먼스를 경유하는 작가의 예술 실천을 조명하는 전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손현선의 힘이 발휘되는영역 포착에 가깝다. 작가와 기획자는 3여 년 전부터 대화하고 부대끼며 서로의 고집과 변화를 추적하고 따르면서 작업에 대한 특정 의미 규정의 어려움을 감지했다. 작업을 언어로 박제하는 과정에 걸친 시간만큼본질에서 멀어지고 뒤틀리는 현상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시시각각 궤적을 펼쳐내 보이는 것이 그를 더욱 유의미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가는 길목을 펼쳐내 보이는 것이 누락 없이 작가의 작업 행위를 관통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전시는 작가의 궤적을 포괄하는 형태의 준비 상태에서 시작한다. 세 가지 작품 <미래 완료>, <부분과 전체>, <언제나 현재로> 모두 특정 대상이 아닌 작가의 행위를 지칭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시간 위에 놓여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시제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 제목 덕분이다. 첫 번째 작품‘미래 완료’는 전시와 함께 작품이 변화되어 감을 암시하며, 전시 또한 창작 과정으로 기능함을 알린다. ≪에너지의 영역≫은 작가의 수행을 전달하고 관객과 만나는 플랫폼으로써 무대화되고, 이로써 이를 스치는 모든 에너지가 남게 된다. 작가가 마주하고 움직여나갈 것들은 무엇일까. 현재의 손현선은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이분법적인 상대가 가진 모순적 사실을 직시한다. 흑과 백, 빛과 어둠, 떨어져 나간 부분과 남은 부분, 채워진 병과 비워진 병 각각은 분리되어 있지만, 서로를 부정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다. 작가가 오랜 기간 다뤄온 회화에서의 프레임 또한 이분법적이지만 연결적이다. 가시적 범주를 사각형으로 베어내지만, 오히려 그 바깥을 무한의 상상 영역으로 열어두기도 한다.프레임 내부의 점, 선, 면은 더욱 그렇다. 찍고 긋고 칠하는 것이 그 반대 영역과의 구분이나 분리를 반드시 의도하지는 않는다. 회화적 요소로 캔버스 위에 고정될지라도, 서로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형상들은 연결되기도, 해방되기도 한다. 덕분에 보는 사람의 시선은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교란되면서 부차적 해석을 이어나가게 된다. 사실‘관계’는 손현선의 회화 작업 전반에 걸친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비가시적 운동 에너지를 가시적 요소로 치환한 기존 회화 작업은 그리는 대상의 움직임과 작가 수행의 틈새를 탐구했다. 운동 상태를 캔버스에 고정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움직임을 전달했던 회화의 비결은 작가 신체에 대상의 움직임을 접목한 것에 있었다. 실존의 포획과 재현을 넘어 그것과 신체적, 심리적 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회화를 수행한 것이다. 덕분에 대상으로부터 시작된 진동은 작가의 몸을 거쳐 캔버스에 머물러 있다가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에까지 전달됐다. 이는 작가의 에너지를 평면 위에 일시적으로 머무르게 하는 실험으로, 작가의 관계적 회화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탐구다. 물론 작가의 관심은 화가라는 정체성을 넘어서기도 한다. 작가의 활동은 전형적 회화 수행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와도 같은 타 영역 또한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목하는 관계는 본 전시 ≪에너지의 영역≫에서 구멍이라는 소재로 더욱 구체화 된다. 구멍은 작가의 기존 작업 대상에 이어 보이지 않는 것의 인지 표현에 더욱 적합한 실체다. 평면에서 구멍은 동그랗게 구부러진 선이나 비교적 둥근 모양으로 칠해진 면으로 묘사된다. 좀 더 세밀한 묘사를 제외하고는 이 이상의 방법은 없다. 입체처럼 실제로 뚫는 과정을 거치면 간단하지만, 회화에서의 구멍은 실상 거짓말이기는 하다. 뚫거나 파서 긁어낸 구멍 조각도 없고, 구멍을 통과했을 때 만나게 될 시공간도 없다. 선과 면을 두고 구멍이라고 우기는 셈이다. 하지만 이평면적이고 회화적인 요소만이 건져낼 수 있는 상상력이 있다. 손현선의 구멍은 주로 누락되거나 소실된 영역으로 인지되는 구멍과 다르게, 어쩌면 다른 가능성으로 채워진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가는 점, 선, 면의 역량으로 구멍의 시각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회화적 수행으로 우리의 감각에 말을 걸면서 인지 영역을 확장시킨다. ≪에너지의 영역≫에 등장하는 구멍은 작가와 관객이 대화를 범하게 되는 하나의 소통 도구가 되고, 우리는 이내 구멍 내·외부의 이분법적 경계가 무색함을 깨닫게 된다. 전시장을 가득 메우는 둥글고 휘어진 검은 물체 <미래완료>는 자성을 가진 벽이자, 구멍이다. 작가는 이를 뚫기도, 메우기도, 긁어내기도, 칠하기도 하는데, 그의 행위에 따라 이는 구멍이어서는 안되기도, 구멍이어야만 하기도 하다. 완전과 불완전 또한 경계 지을 수 없다는 가정을 세운 작가는벽의 왜곡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작가의 자리>에서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스스로의 반응을 실험해 나간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벽의 불규칙적 질감을 따라 이어진 벽화 <언제나 현재로>를 맞닥뜨리게 된다. 오랜 기간 오퍼센트를 오가며 공간과 자신의 조응을 발견하고자 했던 작가는 호흡에 발맞춰 벽의 결을 따랐다. 시작과 끝이 일치하는 선을 그리면서 물감이 부족할 때는 색상을 변경했고 벽의 질감이 방해할 때는 올라서거나 우회했다.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각 호흡에 담긴 붓질은 상호 교차하며 모서리 벽을 입체화한다. 뒤를 돌아서면 32개의 캔버스가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부분과 전체>가 있다.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이 또 다른 전체가 되기도 하는 질서를 시각화한 이 작업에도 분리할 수 없는 이분이 있다.
손현선의 회화 수행은 그 시점의 공기, 빛, 소리, 냄새를 모두 담아내는 몸짓의 발현이다. 그리고 이 시·공간은 작가에게 미지이면서도 확고한 인식의 반경이기도 하다. 전형적 사실에서 벗어나 있어 인지는 불가능하지만,그만이 감지할 수 있는 에너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위 영역의 시각화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위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스스로의 궤적을 추적해 나갔다. 찰나, 앞선 시간, 앞설 시간을 교차시키며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붓끝으로 경계를 그으면서도 양극을 연결해 나간다. 면과 채색으로 구멍을 메우면서 무한한 비인지 영역에 있는 요소를 평면으로 소환했다. 관객은 전시에서 작가의 신체와 마음의 이동궤도를 마주하고, 각자의 구멍을 통과하며 저마다의 에너지 영역을 감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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