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umsan Gallery

SPELLBOUND [스펠바운드]

Artist : 이은

기획자 : 김노암

전시기간 : 2021/07/30 ~ 2021/08/31

SPELLBOUND, 이은 개인전


춤추는 실재(Reality) 또는 하나이며 동시에 여럿
1. "우리의 우주는 그 숱한 검은 구멍(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으며, 결국 다른 우주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다른 우주는 우리 우주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그것이 또 다시 검은 구멍에 빨려 들어가서는 또 다른 우주로 흘러나간다. 이 과정은 끊임없이 진행되어 연쇄반응을 일으켜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즉 無始, 無終, 無終 無始의 또 다른 춤이 이어진다." (G. 주커브, 춤추는 물리, 김영덕 역, 범양사, 1981, p. 283) 평면은 하나의 이상적 개념이고 그 평면 위에 그려진 이미지란 개념과 뒤엉킨 에너지의 장을 이룬다. 이은 작가의 벽화 혹은 회화 또는 드로잉은 실재 세계의 다양한 에너지가 사방으로 유동하며 여러겹으로 중첩되어 있다. 이 에너지는 지상의 일상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함께 일상을 벗어난 시간과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또는 느낄 것 같은 경험이 하나의 형상으로 융합되는 힘이다. 과거 고대인들이 사유했던 춤주는 신(神)에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던 천체의 운행과 율동의 에너지이다. 보르헤스의 상상을 따르면, 인간의 시각을 벗어나 타자의 시각으로 이동하며 마치 알렙처럼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에 우주와 세계 전체가 들어있는 것이다. 나아가 셀 수 없이 많은 다중 우주의 세계가 무한히 개방되어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죽은 물질의 세계가 아닌 물질과 정신이 결합되어 있다는 고대 철인(哲人)들의 세계관을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하나의 이미지에서 두 개의 이미지를, 그리고 두 개의 이미지에서 무한수의 이미지의 세계를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신과 우주와 소통했던 제사장들의 언어, 상형문자와 마법의 언어가 함축하는 힘을 연상시킨다. 신비주의 철학자들의 주장처럼 입문의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길을 잃고 헤메다가 사라지는 평범한 시간들이 다른 차원의 문턱을 넘는 순간 우주와 세계의 일부를 보고 접신(接神)하는 기적을 경험하는 비범한 시간 속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은 과거 종교가 개척했던 통로 뿐만 아니라 철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의 통로를 따라 우주 또는 신 또는 무한자와 만난다. 눈 앞의 이미지가 춤을 추는 형상으로 변신한다면 그 순간이 어쩌면 이러한 형이상학적 신비의 체험과 조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단순히 황홀경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체험하는 사람 고유의 경험, 상상과 사유의 이미지와 언어로 채색되고 번역되어 현시되는 경지이다. 평범해 보이던 이미지가 그 순간 한편의 거대 서사시나 마법의 주문과 같은 실체를 지니게 된다.



2. "일체가 상형문자다. 정신병자나 아이들만이 그것을 안다." (이성복, 아포리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2001, p. 49 )
이은 작가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정신은 굳이 과학의 힘을 빌어 우주선을 타지 않아도 우주를 교감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상징과 은유가 하늘 가득한 세계에서 작가는 자코메티와 브랑쿠시의 정신과 조우한다. 춤추는 우주를 느끼며 존재하는 개인, 상승하는 정신. 작가에게 세계의 모든 것은 회화적 상상력을 위한 물질이자 정신의 재료이다. 눈 앞에 마치 방금 도착한 듯 은하수의 별무리가 화면을 가득 채우더니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온다. 달이 춤을 추는 것은 작가의 내면에 펼쳐진 풍경이다. 현실 세계에서 달이 춤을 춘다면 지구도 춤을 추게되고 인류는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작가에게 세계와 우주는 작품의 재료로서 자기 자신의 내면에 끊임없이 연결되고 연상되는 심상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심상을 가지고 있고 그 감각과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심상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심상과 어울려 춤을 춘다. 달이 마음 속에서 춤을 추는 것은 현실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창작의 출발점은 고립된 개별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개별자의 영역에서 확장되어 타자의 관계 속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면 최초의 이미지에 부여된 다양한 감각과 의미가 변화를 겪으면 독자적인 존재로 변신하며 작가의 손을 떠나 관계의 그물망을 떠돌게 된다. 그리고 쉼없이 의미의 정착(또는 고착)과 이동을 반복하게 된다. 이은 작가의 달은 백남준의 달도 아니고 강익중의 달도 아니고 우주인의 달도 아니다. 편견과 오해, 관습과 합리적 판단이 뒤엉키며 개별자로서 작가의 세계를 침범하고 뒤흔들어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다반사인 현실에서 작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우리는 그것을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늘과 바람과 별과 달이 어울려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감각과 의미, 감정과 정서, 사유와 직관의 모양과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한다. 작가에게 표현은 곧 기록이고 흔적이다. 동시에 하나의 예측 또는 예언의 방향으로 진입한다. 흘리고 뿌리고 던지고 번지며 힘과 방향과 속도가 복잡하고 우연적으로 다른 차원과 연결하는 문을 그려나가는 것. 인류사를 통해 발전해온 전통적인 회화의 재료들이 혼합되고 실험되며 대자연과 개별자가 만나 벌이는 한편의 서사를 완성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현대미술의 고전성(이 용어가 가능하다면)을 제시한다. 작가의 이미지는 물질과 질료, 행위와 채색, 색면과 점과 선. 현대미술이 개척해온 표현의 고전성을 담고 있다.
3. 고대부터 예술에 대해 우리는 놓은 차원의 사유와 은유에 몰입해왔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사람들의 보편적인 공감과 동의를 받는 온전한 예술이 되려면 예술은 진리를 드러내야 한다. 문제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진리의 의미와 형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신화적 표현을 빌어 사람들은 예술은 신의 형상으로 현현한다고 주장한다. 개별자로 현현한다. 즉각적인 감각과 반응, 운동이 결합되어 드리핑 된 무수한 노란 점들과 폭풍같은 에너지와 속도감이 푸른 색면에 층층이 쌓인다. 고도로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형상이 사라지는 과정이 집적된 이미지가 이은 작가의 작품의 주요 미적 특징이다. 작가들은 성장과정에 겪는 트라우마와 성인이 된 후에 겪게 되는 희로애락의 무게가 작가의 내면에 독특한 무늬를 새긴다. 예술가 개인들은 저마다의 표준어가 있다. 작가 스스로 세운 어법과 문법으로 이루어진 문장, 소통의 방식은 사회적 관계에 기초한 권력구조에서는 그 시대와 사회가 공인하는 표준어에서 벗어난 방언으로 취급된다. 이미지를 둘러싸고도 이러한 권력구조가 작동한다. 이미 미술사적 맥락에 놓인 상태에서 일반적 맥락이라는 큰길에서 벗어나 좁고 구불구불하거나 목적지가 불분명한 샛길로 들어서서 쉬지 않고 나아간다는 것은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동료들에게도 깊은 인상 또는 영감을 준다. 행위의 반복으로 강화하는 존재의 무게가 이미지의 깊이와 질감에 더 복잡하고 동시에 교묘하고 신비한 미적 효과로 승화된다. 예술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채 미완으로 남겨진 예술가의 여정의 총합일 뿐이다. 작품 하나하나는 그렇게 작가가 일생을 통해 구성해온 세계의 풍경의 한 부분(또는 한 조각)만을 보여준다. 작가가 평생 그린 모든 작품을 보더라도 그것은 삐뚤빼뚤 뒤틀리고 조각난 세계의 파편들을 얼기설기 모아둔 것에 불과하다. 한 자각의 내면에서 벌어진 또는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들, 경험들, 이미지들을 우리는 결코 완전한 모습으로 알 수 없다. 부분과 파편으로 접하게 되는 세상의 나머지는 우리의 감각과 상상력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수용자들이 예술(적 관계)을 완성하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예술 활동이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생을 채우는 무수한 취사선택의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곤란하거나 모호해서 그 결정의 결과를 확신할 수 없을 때 옆으로 미뤄둔 것들이 반복되면 그 길을 어렴풋이 알게된다.
김노암


BACK TO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