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9

Antagonist [적대자]

Artist : 박철호

전시기간 : 2021/07/07 ~ 2021/07/21

<적대자 Antagonist> 박철호 개인전 / 스페이스 나인



대자를 위한 적대자
; 적대자가 주인공이 되려면 또 다른 적대자가 필요하므로, 글 배우리

서막
내 역할을 말하기 전에, 냉정함으로 빛나는 반동분자이며 메타적인 시선을 갖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적대자〉 마지막 장에서 금발의 가수에게 바나나 껍질을 던진 사람은 왠지 나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인물은 바나나껍질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고 나서 총 맞아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진짜 역할은 무엇인가. 겸손으로 무장하고 쑥스러워 하는 것 같으면서도 뒤에서 모두를 조종하는 박철호라는 감독에게 나는 이 전시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뽑혔다. 내가 병맛을 좋아하는 냉혈한이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도로시나 캡틴 큐, 선에게는 비할 것도 없고 테일러한보다도 역할은 작지만, 역할에 충실해볼 예정이다. 그러고 보니, 박 감독의 지난 개인전 서문을 썼던 사람이 왜 친애하는 형님에게 쓰는 편지로 평문을 대신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는 현명하게 비평가 역할을 맡지 않았다. 달리 말해 감히 감독을 감독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냥 내 역할대로 반동적이면서 메타적인 척 해볼 요량이다. 사실 머리가 나쁜 ‘인팊’으로서, 감독님 앞에서 내가 으스댈 수 있는 분야는 맞춤법뿐이니, 내용은 둘째 치고, 글자나 틀리지 않도록 조심해보겠다. 지금부터 나는 비변사(批辯士)다.

천억불의 교환가치
(천)억불자원. 박철호 감독이 일하는 곳의 이름이다. 그는 오래된 물건이나 오래되진 않았지만 버려지는 물건을 수거해 돈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산책이 모두의 취미가 되기 전, 산책을 업으로 삼았던 넝마주이의 후예다. 생계와 작업이 밀착한 이 곳에 몸담은 지도 4년차로, 거래처도 많이 늘고 있다. 예술계에도 그의 ‘작업’이 많이 알려져 작품 철거라든지, 작업실 이사, 정리, 그리고 재활용에 대한 강연까지, ‘고물’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들 그를 부른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고물이 생기면, 그는 흰색 포터, 9541 선의 죄수번호가 바로 그의 차 “남바”다. 나는 이런 과잉 친절은 미술에서는 썩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작은 빌미들을 좋아하고 교과서에 실리기도 용이할 것이다.
을 타고 달려온다. 2년 전부터 하나둘씩 모은 것들은 일곱 개 별이 국자 엮이듯 엮여 각본(책자 〈적대자〉 참고)과 극으로 만들어지고 지금의 〈적대자〉 전시를 채우고 있다. 전시장에서의 데뷔를 앞두었던 물건 중에 못 온 것이 있는데 그건 포스터로만 남겨진 초록 사이렌. 억불자원에 모셔놓은 것을 누군가 가져갔다고 한다. 그것이 왔다면 전시장은 스세권이 되어 사람들이 더 몰려왔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튼 박 감독은 철저한 물질만능주의다. 그는 고물로 세계를 파악하고, 고물로 세계를 재구성한다. 개인전을 위해 쓴 4장의 이야기는 모두 주운 물건에서 시작한다. 더 좋은 물건이 나오면 이야기도 바뀐다. 실제로 각본 속 캡틴 큐 배 이름인 ‘핑크레인보우’는 박철호 작가가 9541을 타고 간 작업장에서 애꾸눈 여우박제를 만난 후 이름이 바뀌었다. 고물을 업으로 하는 그가 예술을 한다고 하면, 그의 작업에서는 확실히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그가 획득한 것들을 볼까. 아프리카박물관에서 가져온 뱀. 호피무늬로 덮인 태닝기계, 철문, 탄피, 애꾸 붉은여우 가죽, 그리고 누군가 그린 캔버스 그림과 액자들, 오래된 영화포스터, 선박의 방향키, ‘desperados(데낄라맥주의 이름, 악당)’ 네온, 샹들리에, 오래된 집에서 뜯은 벽 등등등등등. 무대를 지을 합판과 각목은 물론이고, 특정 장소라고 할 수 있는 헵시바까지, 분야를 넘나드는 ‘콜렉숀’ 되시겠다.
이것들은 선의 독백 영상이 있는 영화관(제1장. 아수라남작증후군: 사품(蛇品)), 캡틴큐가 노래하는 배(제2장. 캡틴 큐: 붉은바다여우), 빈곤포르노의 여주인공이 들른 헵시바(제3장. 헵시바: 압디라만 카트에나), 붉은바다여우범선, 이렇게 네 개의 무대로 구성된다. 결국 그가 쓰레기로 만든 건 설치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극 무대다. 내가 그를 작가가 아니라 감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가 미술작가였다면 쓰레기로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었겠지만 그는 영화를 찍었다. 완벽한 영화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연극과 영화의 요소가 적절히 섞였다. 쫙 펼쳐진 짤병풍으로 시작한 이야기꾼 이력이 꽤나 탄탄해졌다. 그의 작품의 방점은 여튼 새로운 짤로써의 고물과 시나리오다.
그가 고물을 한다고 해서 호더 기질을 전시장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그는 이야기에 필요 없는 건 과감하게 다 뺐다. 심명자 씨의 그림 심명자 씨의 싸인이 있는 20호 정도의 그림이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 앞에서 모두 정면으로 서서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다. 깨끗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이 친구들 중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한 친구가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면 봉사를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선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작가는 캡틴큐의 애꾸 콜렉숀에 이 작품을 걸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전시의 입구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까 저어되어 눈물을 머금고 뺐다는 후문이다.
도 안타깝게 걸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지만 박 감독은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 어부였던 캡틴 큐가 쓰레기 문제를 나열하는 건 사실 환경오염에 관한 문제의식 설파라기보다 본인 삶에 대한 핑계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쓰레기 문제를 이야기하려거든, 그가 일하는 현장을 사진이나 간단한 영상으로만 남겨도 웬만한 다큐는 나오고도 남을 것이다. (더구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그가 모은 고물은 ‘쓰레기’랑은 또 조금 달라서 나름대로 진귀(?)한 것들이다. 작가는 요즘 쓰레기 양산 원인인 편리함 추구, 패스트패션 등을 추적하는 것과 다른 결로 그것들에 접근한다, 좀 더 이전의, 진득한 취향 같은 것들도 결국에는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로 알 수 있는 교환가치의 몰락이라든가 폐기물 자체가 이미 보여주고 있는 계급 쓰레기에도 급이 있어서 재활용되는 것, 소각, 매립되는 것 등으로 나뉘는데 매립은 소각도 할 수 없는 악성폐기물의 종착지다. 참고로 유화물감으로 그린 캔버스는 매립해야 한다.
등, 한두 단계 더 진화한 쓰레기 고찰을 보여준다. 쓰레기는 전시 주제가 아니지만 우리 생활에 쓰레기 문제가 바싹 들러붙은 것처럼 그의 작업에서도 눈여겨볼만한 기본값이 된다. 수집의 성격상 연대가 좀 된 것들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레트로’라는 양식이 발현되어 유행과 구식이 엉긴 틈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있는 모양도 재밌다.

고통과 환희는 같은 얼굴에서
이번 적대자에서는 이름에 착할 선(善)자를 쓰는 선이 그 주인공이다. ‘악당 시리즈’에서도 줄곧 그랬듯, 박철호 감독 마음 속 최애는 언제나 주인공에 대적하는 적대자다. 아예 악역이 주인공인 영화는 조커나 베놈 빼고 거의 없다시피하다. 악인이 악인이 되기까지, 그 배경이 되는 사회구조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 되겠다. 사회구조는 어쨌건 잘못한 사람만 무조건 벌 받아야 한다. 더구나 품위가 없다면 그냥 나가리다. 박 감독은 악인, 아니 악역이 악역을 맡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밝힌다. 그가 ‘적대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자라준 적대자의 아들 선은 금딸기 영화 테이프 위 어머니의 얼굴을 본 후 단박에 경지에 올라 적대자의 고질병 ‘아수라남작증후군’도 깨끗이 치유한 모습이다.
그래서 원래 박철호 작가의 비평문의 도입부에는 이걸 쓰려고 했다. 베트남 출신 선승이자 인권운동가, 시인인 틱낫한의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의 부분이다.

나는 맑은 웅덩이 한가로이 헤엄치는 개구리-또한 나는 소리 없이 다가와 그를 삼키는 뱀
나는 대남처럼 말라가는 우간다의 아이-또한 나는 우간다에 살인무기를 파는 거래상
나는 조각배에 몸 맡기고 고국을 탈출하다 해적에게 강간당하고 바다에 몸 던진 열두 살 소녀-
또한 나는 아직 남의 마음 헤아리고 사랑하는 가슴 지니지 못한 해적
나는 막강한 힘을 주무르는 보안부장-또한 나는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서서히 죽어가며 피로써 국민의 빚을 갚는 정치범
...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
내 모든 울음과 웃음 한꺼번에 들을 수 있도록
내 고통과 기쁨 하나임을 알 수 있도록

한때는 누군가의 기쁨이었고, 지금은 폐기물인 고물. 과거 영광과 지금의 초라한 운명이 엉겨 붙은 모양은 지구인들이 서로 부와 가난을 교환하며 공생할 수밖에 없는 모양과 너무 닮아있다. 폐기된 PC산맥, 지구 어딘가 값싼 노동력 덕에 내 책상 위에는 새로 산 아이맥이 자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작품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도록, 보는 이들의 마음 한 구석에 찝찝이라는 이름의 창이 콕 박히게 만들어주는 이유다. 누군가의 불행이 당신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것.
박철호 감독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종교, 폭력, 바다 같은, 유명한 고전에는 다 들어있을 법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물론 그는 팃낙한의 시를 의식하지 않았듯 고전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과 고물이 준 영감으로 끄적인 것뿐이다. 작가가 체화된 상징들을 쓴다고 해서 더 샤먼적이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약간 예민한 인간이라면 마땅히 궁금해하고 다가가고자 하는 감각일 뿐이다. 예술가의 고대 본령이 샤먼이라고 해서, 다원예술이 판을 친다고 해서, 세상이 흉흉하니 굿이 필요하다고 해서 현대 작가들이 굿을 할 필요는 없다. 별도 못 보는 사람들이 주워들은 걸로 굿을 하다가는 작두에 발만 잘린다. 동서를 가로질러 모든 곳에서 나타나며 샤먼적 궁금증을 증폭하는, 뱀 이야기는 물론 따로 들여볼만하다. 단, 예민한 인간으로서. 미술도상학으로는 ‘여기도 뱀이 있다!’ 외엔 밝힐 것이 없어 매력이 없다.
뱀, 북두칠성, 표류, 환생, 기독교와 불교,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들의 미개성 등등등. 고대 샤머니즘에서 시작된 상징들이 수천 년 동안 예술작품에 등장했던 것처럼 박철호 작가의 짤, 그리고 병맛 같은 이야기에서 그대로 등장한다. 선의 아버지가 뱀에게 물리고 세상 풍파 다 겪고, 사품을 고백한다는 것(아니, 그건 거짓말이고 사이렌이 되길 원한다(된다)는 것)도 고대부터 이어진 상징들과 설화들의 짬뽕이다. 이건 뭐 머리 굴려서 짠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박철호 감독은 사이코메트리 심령술을 이용해 고물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박 감독은 명맥이 끊겨가는 상징매개자로서의 운명을 고물로 받든 고물문화사가이자, 고물각본가이자 고물연출자다.
전시장에는 캡틴 큐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온다. 고물은 배의 뒤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캡틴 큐가 선박 위, 무대처럼 높은 고물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빌미’에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계속 항해하는 것은 박철호다. 그의 이야기에는 바다가 꼭 등장한다. 선의 아버지가 꼬리가 보이지 않는 붉은여우가 되어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적대자〉는 〈당매〉(2020), 〈녹수정〉(2020)의 난파된 등장인물들과 그물처럼 연결된다. 물은 무서워하는 사람이 애꾸 해적에 대한 애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박철호 작가야말로 꼬리가 달린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고물 작업이야말로 꼬리를 자르는 수술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폐막
이제 실재계는 그것을 억지로 들춰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바다 쓰레기가 눈앞에 돌아온 것처럼, 박철호 작가는 고물들을 전시장 안으로 들여와 실재계의 포털을 항상 열어놓는다. 그리고 앞으로 전시장 바깥에서도 포털은 쭉 열릴 예정이다. 작가들을 위한 ‘오브제 구독 서비스’ 같은 걸로 말이다. 하지만 작품으로도 그 포털이 계속 열리기를 바란다. 미술전시장은 그의 각본을 담기에 좁다. 책이나 극장에서도 볼 수 있도록 감독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비카인드 리와인드〉 정도는 거뜬히 찍어낼 수 있을 테니까.
비변가 역 |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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