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 김미란
갤러리 : Gallery 9P
기획자 : Gallery 9P [Woongjong Yoo]
전시기간 : 2019/06/21 ~ 2019/07/13
Dreamtime / Miran Kim / 김미란 / 21(fri) June. ~ 13(sat) July. 2019 / Gallery 9P
웰컴투드림타임
보이는 것 모두
꽃 아닌 것 없고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아닌 것 없구나
_바쇼
김미란 작가는 바쇼의 하이쿠 감흥처럼 부드러운 타입의 드림노트[Dream-naut]입니다.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인 듯이 이 드림노트는 자신의 익숙한 꿈의 시공을 날아갑니다. 그는 처하는 곳마다 거하는 때마다 자신의 꿈물질로 이 세상 역시 꿈의 시공으로 변환해내려 합니다.
과거에는 탁월한 시인들이 대체로 드림노트여서 지금처럼 생소한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가령, 저기 섬서성 출신의 유목민 오랑캐 후예였던 이태백이 당나라의 호호탕탕한 국제적 흐름을 타고 동정호까지 진출하여 그 물 속의 달을 즐깁니다. 물 속의 달을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일렁이는 달그림자와 흐르는 물결이 시각 이상의 감흥으로 인도합니다. 그 감흥 속에서 드림노트로서 이태백이 쓴 글귀는 ‘기경비상천’[騎鯨飛上天], 즉 “고래를 타고 저 높은 하늘을 날아가다” 입니다. 이것은 꿈인 듯, 꿈 아닌 듯 자신의 마음이 꿈물질로 표현된 예입니다. 이처럼 고래 타고 천계비행이라는 덕목은 늘 시인들의 깊은 시심에서 태동했고, 기나긴 무의식의 여행을 해왔습니다. 사실 이러한 천계비행은 지구의 꿈 위를 나는 것입니다. 김미란 작가는 그러한 여행의 목적지로서 시심 가득히 오늘날의 ‘기경비상천’을 실행하는 낭만주의자이자 표현주의자입니다.
(...)
자세히 살펴 보니
냉이꽃이 피어 있네.
울타리 옆에
_바쇼
꽃 속에 꽃이 피어납니다. 다시 그 꽃 속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냉이꽃은 보잘 것 없는 꽃의 대명사지만, 그 홑겹의 꽃 속에서 문득 깊이가 느껴지면서 새로운 꽃이 피어납니다. 이것이 꿈의 영역에서는 “꿈 속에서 꿈을 꾸다”가 됩니다. 과거 동아시아 사람들은 꽃 속에서 꽃을 피우듯이 “꿈 속에서 꿈을 꾸다”라는 것은 이 지극한 현실의 감각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나 서구화, 근대화 되면서 꿈이라는 깊이, 꿈 속의 꿈이라는 지각적이면서 지성적인 깊이에 둔감해져 버렸습니다. 가만히 담 아래의 봄볕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냉이꽃의 깊이이고, 그 깊이는 자각몽의 차원에서 이야기되는 감흥의 깊이입니다. 그러나 교란된 우리 신경계는 이 냉이꽃 한 송이 들어보이는 비밀에 미소 짓기 참 애매해 합니다. 과학은 오히려 이 미소에 화답합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니 꽃 한송이가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꽃 속에 꽃이 피어나는 장엄함, 즉 화엄[華嚴]의 숭고미학입니다. 이러한 미학이 김미란 작가의 자각몽 세계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한 숭고한 세계를 가리켜서 드림타임[DreamTime]이라고 합니다. 드림타임의 하늘을 날면서 숲을 물 속 깊이 드리우게 하는 김미란 작가의 세계는 단순한 낭만주의나 표현주의가 아닙니다. 그의 자유로운 비행술은 단순히 꿈이라는 백그라운드 때문이 아니라 교묘한 꿈의 장치이자 작업에 기인합니다. 즉 김미란 작가는 자각몽[Lucid Dream]의 드림노트입니다. 꽃 속에서 꽃을 피우듯 꿈 속에서 꿈을 꿉니다.
드림타임[DreamTime]은 서구화 되지 않은 지구의 꿈입니다. 김미란 작가의 예술세계는 한 개인이 꾸는 지구의 꿈을 2차원 평면으로 옮겨놓고, 그 평면이라는 막이 작동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꿈을 우리 꿈꾸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사람들에게 종주먹 들이대듯 강타합니다. 그 강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사람은 지구의 리듬에 맞춰서 꿈꾸는 존재였고, 현실과 함께 꾸는 꿈은 지구 역사 45억년 생명의 리듬과 동조하면서 특별했습니다. 지금도 오세아니아 남방의 에보리진족은 이 꿈을 꾸는 사람들이고, 꿈과 현실이 섞여 있습니다. 이미지의 상상적 장소에서 꾸어지는 이 드림타임은 단순한 ‘꿈의 시간’이 아닙니다. 에보리진족에 의하면, 이 ‘꿈의 시간’은 지구가 생명의 질서를 만들던 태초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 ‘바이암’이라는 거대한 뱀의 신이 이 지구를 창세하고 다스렸습니다. 어느 날 그 뱀신은 잠에 빠져들어서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꿈 속에서 이 지구를 창조한 조물주들이 검은 힘에 의해서 망쳐지는 대지로부터 하나 둘씩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신들은 나무로도 변하고, 토끼로도 변하지만, ‘바이암’은 자신의 꿈에 삼켜지기 시작합니다. 꿈은 꿈 그 자체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저 지하로부터 스며든 살아있는 에너지의 정감이 꿈틀대다가 대지의 나팔 소리로 웅웅거리기 시작하고, 다시 무지개뱀으로 화해서 이 세상에 출현합니다. 그때 검은 힘의 가혹한 폭력에 무너져버린 이 세상은 다시 본래의 환한 생명질서를 회복하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그 검은 힘은 무엇일까요? 그 검은 힘은 어둠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빛 오염이자 서구화입니다. 어둠은 차라리 꿈의 장소입니다. 빛 오염의 도시 감수성은 잠 못 이루는 전전반측인 동시에 꿈자리 사나운 새벽 뒤척임입니다. 빛 오염은 미세먼지보다도 더 해롭고 우리 뇌의 건강을 위협하며 존재론적 불안 속에 빠뜨립니다. 검은 힘은 거대한 블랙 벨트의 무지막지한 전선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휩쓸고 지나갑니다.
서구화는 1750년대 이후의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유라시아의 기우뚱거리던 천칭이 드디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을 말합니다. 식물지리학자 훔볼트는 열대로 진출하여 그곳의 기후와 식생을 통해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여 식민주의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 열대라는 타자의 배제로부터 다윈과 그 후예들의 과학이 싹터 나왔습니다. 드림타임은 그 열대라는 풍토에서 꾸는 지구의 꿈을 이릅니다.
-안무비평가 김남수의 “웰컴투 드림타임”-2018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