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 조미진
갤러리 : Photographer's Gallery Korea
전시기간 : 2019/04/11 ~ 2019/05/04
Title: Quintessence 전시기간: 2019년 4월11일(목) - 2019년 5월 4일(토) 일요일-화요일 휴관 장소 : Photographer's Gallery Korea
빛이 사랑과 함께 오다
살다 보면 익숙해져 있던 무엇인가에 홀리듯 설레는 날이 있다. 5년 전, 나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소리에 빨려 들어갔다. 리모컨 버튼을 누르듯 무심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아, 도대체 이게 뭐지? 내 안에 고요히 잠들어 있던 낯선 감각들이 실루엣처럼 어른거렸다.
처음에는 카메라 기능이나 수평•수직 구도조차 몰랐다. 셔터를 누르는 횟수가 늘어가는 동안 빛과 그림자의 강약, 빛의 양에 따른 섬세한 차이가 프레임의 안과 밖을 어떻게 바꾸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순간 포착은 교감을 통해 피사체에 강렬한 질감을 새겨 넣는 것으로 직관과 감수성을 요구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셔터를누를 때 난 숨을 죽인다. 그 순간 살아있는 느낌에 전율한다. 숨결로 눌러지는 셔터소리에 몰입하며, 빛이 연출하는 파노라마의 황홀경에 빠진다.
사진은 내게 몰입하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빛으로 본 세상은 눈으로만 보던 세상과 전혀 다른 낯선 세계였다. 일상적으로 만나던 사물들이나 현상이 아름다워졌고, 예전부터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더 생경해지는 듯했다. 인물을 담으며 감동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면서 대상에 대한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다. 빛은 내게 새롭거나 혹은 낯선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사랑을 선물해 주었다. 이렇듯 ‘본다’가 아니고 ‘보여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 것이 빛이었다.
빛 따라, 바람 따라 인상이 달라지며 색이 달라지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순간적인 색의 변화를 인상주의 회화처럼 사진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평면성의 회화처럼 담아내는 사진에는 햇살이 출렁인다, 바람이 분다. 직관에 따른 이미지를 추상이나 구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접근법을 체득해가면서 “블루 연작”, “그림 같은 사진”, “인물사진” 등 세 가지의 테마로 나누어 사진을 찍고 있다.
블루연작은 파란색이 정화·해방감·희망·치유의 의미를 띠고 있듯이 바다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양수 속의 태아로 회귀하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져서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우주의 색으로 삶과 죽음이 하나이듯 영원 회귀의 상징하기도 한 블루는 꿈과 현실이 만나는 경계선이면서 그 경계를 해체시키는 색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도 한 블루는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언제나 함께할 ‘나만의 색’으로 ‘영원의 블루’를 찾아갈 것이다.
초점이 해체되어 그림처럼 보이는 사진은 경계가 없는 세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의도적인 흔들림이다. 빛의 리듬으로 경계를 허물었다. 흔들림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저도 변화하듯 흐르는 우주의 빛과 시공간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스트리트 사진을 찍게 되면서 사진 한 장에 인물 내면의 희로애락과 스토리가 담겨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뒤늦게 살아난 나의 본능이 카메라를 매개로 해서 나와 타인의 심상을 결합시켜 더 깊은 공감 속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니 내가 카메라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선택한 세 가지 테마는 우주안의 신비를 엿보듯이 일상에서 보고 느끼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길잡이다.
나는 눈을 뜨면 길을 걷고, 그 길에 들어서면 길을 잃는다. 신비로움, 회귀와 순환 그리고 아름다움·그리움·기다림·설렘·감동…… 새롭게 되살아나는 일상의 가치들이 내게 ‘순간포착’이라는 사랑을 내주고 있다. 적어도 내 마음에 ‘흔들림’이 살아남아 있을 때까지는 나는 처음처럼 셔터를 누를 것이다.
첫 소책자로 “그림 같은 사진”을 담았다. 다음에는 ‘블루 시리즈’가 만들어질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떼어낼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하며
2018. 12월 어느 겨울 날
조미진